나를 브랜딩해보자, 캐릭터보다 먼저 해야 했던 일

"나를 브랜딩해보자." 이 문장은 거창한 계획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그 답답함이 이 질문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로고나 콘셉트보다 먼저 필요했던 건,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부터 인정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특히 오랜 시간 같은 환경에서 일해온 경우에는 더 그렇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왔는지"를 따로 정리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평가하려 하지 않는 존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최근 1년 가까이 대화를 쌓아온 GPT에게 말이다.
GPT에게 '나라는 사람'을 물어보다
"너가 바라본 나는 어떤 사람이야?"
이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전제로 한다.
그동안 어떤 질문을 해왔는지,
어떤 주제에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고민을 반복했는지가 모두 반영된다.

GPT의 답변은 칭찬도, 비판도 아니었다.
대신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한 요약에 가까웠다.
이 답변을 읽으면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아,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이 시점이 브랜딩의 출발점이었다.
브랜딩은 포장이 아니라 정리라는 걸 알게 됐다
브랜딩이라고 하면 흔히 특별한 캐릭터, 강한 한 문장, 눈에 띄는 콘셉트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했던 건 그 반대였다. 잘 보이기 위한 포장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선택과 생각을 정리하는 일.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해왔는지,
왜 기술 그 자체보다 "이게 실제로 쓸모가 있나?"를 고민했는지,
왜 빠른 결과보다 오래 가는 구조에 집착했는지.
이걸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를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조금 가벼운 질문을 던져봤다.
"그럼 이런 나를 동물로 표현하면 뭐가 어울릴까?"

이 질문의 목적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성향을 이미지로 비유해보는 실험에 가까웠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오소리였고, 이후 캐릭터 이미지까지 이어졌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였다.
캐릭터는 결과물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오소리 캐릭터는 인상적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 그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건 "나는 어떤 방향의 사람인가"라는 감각이었다.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고,
앞에 나서는 성향도 아니지만,
쉽게 방향을 바꾸지 않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계속 이어가는 방식.
이걸 인식한 순간, 브랜딩은 훨씬 단순해졌다.
나를 브랜딩한다는 건, 방향을 고정하는 일
이제 브랜딩은 이렇게 정의된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X)
이미 살아온 방식을 억지로 바꾸는 것 (X)
대신
지금까지의 선택을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하고,
앞으로도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정하는 일 (O)
캐릭터는 그 방향을 설명하기 쉽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라 기록이다
아직 완성된 브랜드는 없다.
슬로건도, 명확한 정답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제는 무작정 무언가를 더하는 단계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
이 글은 결과 발표가 아니라 과정 기록이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나를 브랜딩하는 첫 번째 콘텐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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